<aside>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공모한 <2022 인문실험 공모전>에 참여해 독립출판을 경험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선생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틈틈히 시를 남기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 세 명이 모여 시집을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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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소개

"직업은 거들 뿐 삶을 살자"

현생을 잘 살아보고자 10년 전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진로를 한참 고민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인문학 수업을 함께 들었습니다. 당시 <소유냐 존재냐>, <오래된 미래> 등을 읽고 발문하고 토론하며 존재론적 삶과 시대에 대해 사유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철학 수업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돌아가시며 장례식장에서 만났습니다. 지금 우리 모습에는 10년 전의 사유하던 소년은 없고 학업과 일에 치여 하루를 버겁게 넘기는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시를 남기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집을 만드는 것을 핑계로 모여서 함께 공부하며 10년 전처럼 토론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각자 역량이 다르기에 분야를 정했습니다. 준형은 독립출판에 전반적인 내용과 제작에 초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대현은 책 디자인을 맡았고, 중신은 인디자인을 배워 편집했습니다. 또한, 책 한 권을 정해서 매주 정해진 페이지까지 읽은 후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우리지만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매주의 회의는 공감하고, 위로받고, 10년 전 배움들을 상기하며 미래를 모색하게 되는 진취적인 시간이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사유가 빠진 삶을 사는 저희에게, 선생님께서 시가 되어 찾아와 유쾌한 잔소리를 퍼부어 주신 것 같았습니다. 시집은 완성했지만, 오히려 숙제가 많이 생겼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잘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험과정

<몸하다> 표지 디자인

<몸하다> 표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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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의 회의

매주의 회의

오래된 관계는 늘 하던 것만 하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자리를 갖는다거나 축구를 하거나 하는 일들 말입니다. 시집을 만드는 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늘 보는 사이지만 처음 보는 부분을 발견하고, 서로 마찰하고, 중재했습니다.

또, 제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낯선 매체로 창작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프러덕트를 만들며 생산자의 입장에서 고민했던 경험은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엮은이의 글

바람이 차갑게 바뀌는 초가을이었습니다.

작은방을 꽉 채우는 커다란 원탁에는 시시덕 떠들던 학생들이 둘러앉아있습니다. 벽 뒤로 매입해 놓은 주황빛 간접등이 천장을 타고 원탁으로 쏟아집니다. 선생님께서 차려주신 집밥을 한껏 먹은 후여서 우리는 금세 원탁에 엎드려 잠에 듭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비몽사몽 졸린 눈을 뜨니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상을 힘껏 ‘탁’ 치시며 책 한 권을 꺼내셨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입니다.

막 잠에서 깨어나 흐리멍덩해진 눈이 초롱초롱해지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작지만 매료되고 얇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우리마음에 들어온 첫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수업이 끝나고 작은방을 나와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양평과 여주 사이작은 마을 안토물이 아니라 내 존재가 행성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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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기억은 선명합니다.

끝없이 나열된 책장 속 손때 묻은 엄청난 양의 책들이 기억납니다. 그 책들을 보고 놀랐던 저희에게 미소 지으시던 얼굴이 기억납니다. 선생님은 기쁜일에도 웃으셨지만 참담함과 안타까움을 가르치실 때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